2022년 5월 'FEARLESS'로 시작해 빌보드 200 4연속 톱10까지 — 흔들림을 연료로 바꾼 다섯 명의 4년을 정리했다.
그룹명부터가 선언이다. LE SSERAFIM은 'I'm Fearless'의 알파벳을 재배열한 애너그램. 데뷔 첫 곡 제목이 'FEARLESS(겁이 없다)'였고, 두 번째 미니앨범 제목은 'ANTIFRAGILE(외부 충격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이었다. 이름과 작품과 서사가 한 방향을 가리키는 그룹은 흔치 않다.
그러나 르세라핌의 '두려움 없음'은 처음부터 손쉽게 주어진 슬로건이 아니었다. 2022년 5월 2일 6인조로 출발한 직후 김가람이 두 달 만에 그룹을 떠났고, 남은 다섯은 5인조로 다시 대형을 짜야 했다. 데뷔 무대의 라이브, 안무, 끝없는 시선 —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르세라핌의 메시지가 공허한 자기최면이 아니라 현실적 설득력을 얻은 건, 그들이 실제로 흔들렸고 그 흔들림을 무대 위에서 끝내 버텨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 사쿠라, 김채원, 허윤진, 카즈하, 홍은채는 'ANTIFRAGILE'로 K팝 걸그룹 최단기간 빌보드 200 진입 기록을 세웠고, 'EASY'로 빌보드 핫100에 처음 이름을 올렸으며, 2025년 'HOT'으로 4세대 걸그룹 중 유일하게 빌보드 200 4연속 톱10이라는 숫자를 만들어냈다. 이 기사는 그 숫자들 뒤에 있는 다섯 사람과, 그들이 통과해온 시간의 기록이다.
르세라핌은 하이브 산하 쏘스뮤직이 만든 첫 걸그룹으로, 2022년 5월 2일 데뷔 EP 'FEARLESS'와 함께 세상에 나왔다. 출발선부터 다국적 구성이었다 — 일본 출신 둘(사쿠라·카즈하), 한국계 미국인 하나(허윤진), 한국 멤버 셋. 평균 키 168cm대의 시원한 비주얼과 절제된 무드는 데뷔 즉시 '신인답지 않다'는 평을 끌어냈다.
하지만 진짜 시험은 데뷔 직후 찾아왔다. 6인조로 출발한 지 약 두 달 만인 7월, 멤버 김가람이 그룹을 떠나며 르세라핌은 5인조로 재편됐다. 안무 동선과 파트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했던 시기, 동시에 데뷔 라이브를 둘러싼 거센 시선까지 겹쳤다. '두려움 없음'이라는 콘셉트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위기는 르세라핌 서사의 핵심 자산이 됐다. '예상치 못한 악재와 거센 시선을 겪어내며 오히려 현실적 설득력을 얻었다'는 평가처럼, 흔들리지 않는 척이 아니라 흔들림을 통과해 단단해지는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ANTIFRAGILE'이라는 단어 그대로의 궤적이다.
김채원은 르세라핌의 리더이자, 그룹에 가장 먼저 합류한 멤버다. 그에게 르세라핌은 사실상 두 번째 데뷔다. 2018년 Mnet '프로듀스 48'을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걸그룹 IZ*ONE에서 활동했고, 그룹 해체 후 쏘스뮤직에서 새 출발을 택했다. 검증된 무대 경험과 신인의 절박함을 동시에 가진, 르세라핌의 균형추 같은 존재다.
퍼포먼스 안에서 김채원은 댄스 브레이크의 센터에 서며 곡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리더로서는 멤버들을 다그치기보다 안정감으로 묶어주는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IZ*ONE 시절을 함께한 사쿠라와의 재결합은 르세라핌 초기 안정감의 큰 축이기도 했다.
사쿠라(미야와키 사쿠라)는 르세라핌 최연장 멤버이자 K팝과 J팝을 모두 통과한 베테랑이다. 14세에 HKT48에 들어가 7년을 활동했고, 이후 IZ*ONE으로 한국 무대를 경험한 뒤 르세라핌에 합류했다. 두 번의 프로젝트 그룹과 한 번의 정식 그룹 — 사쿠라에게 르세라핌은 '마지막처럼 임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반면 카즈하는 전혀 다른 경로로 들어왔다. 쏘스뮤직의 온라인 오디션을 거쳐 네덜란드에서 발레를 전공하다 2022년 1월 합류한 케이스다. 약 15년에 가까운 발레 훈련에서 비롯된 긴 라인과 높은 다리 익스텐션은 르세라핌 안무에 다른 그룹에는 없는 우아함을 더한다. 베테랑의 단단함(사쿠라)과 정통 무용수의 선(카즈하)이 한 팀 안에 공존하는 셈이다.
허윤진은 르세라핌의 보컬이자 그룹 내 가장 적극적인 창작자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배경에서 오는 영어 가사 감각과 작사·작곡 능력으로, 여러 수록곡에 직접 참여해왔다. 무대 위에서는 파워풀한 춤선으로 팀 콘셉트에 가장 잘 녹아드는 '르세라핌의 정체성'이라는 평을 듣는다.
막내 홍은채는 2006년생으로, 2022년 1월 20일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데뷔 라인업을 완성했다. 댄스로 연습생에 들어온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고, 특히 남자 아이돌 안무 커버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데뷔 당시 만 15세였던 막내가 4년간 글로벌 무대를 누비며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르세라핌 서사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팀의 색은 결국 이 다섯의 결합에서 나온다. 두 번째 기회를 잡은 김채원, 마지막처럼 임하는 사쿠라, 펜을 쥔 허윤진, 무용수 카즈하, 그리고 무대 위에서 자라는 홍은채 — 서로 다른 출발점이 '두려움 없음' 한 단어로 수렴한다.
르세라핌의 음반 서사는 제목만 이어 읽어도 한 편의 성장 드라마다. 데뷔 EP 'FEARLESS'(2022.5)에서 '겁이 없다'고 외쳤고, 미니 2집 'ANTIFRAGILE'(2022.10)에서 '시련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지겠다'는 한 단계 진화한 메시지를 던졌다. 'ANTIFRAGILE'은 그룹 첫 밀리언셀러이자 빌보드 200 14위에 올라 당시 K팝 걸그룹 최단기간 진입 기록을 세웠다.
2023년 5월 첫 정규앨범 'UNFORGIVEN'은 써클(구 가온) 앨범차트 1위와 빌보드 200 톱10을 동시에 달성했고, 같은 해 10월 블리자드 '오버워치 2'와 협업한 영어 싱글 'Perfect Night'은 써클 디지털차트 6주 연속 1위라는 롱런을 기록했다. 한 해 사이 르세라핌은 콘셉트형 신인에서 차트 지표가 받쳐주는 메인스트림 그룹으로 도약했다.
이후 'EASY'(2024.2)는 빌보드 200 8위에 오르는 동시에 빌보드 핫100 99위로 그룹 첫 핫100 진입을 이뤘고, 'CRAZY'(2024.8)를 거쳐 'HOT'(2025.3)으로 빌보드 200 9위에 올랐다. 이로써 르세라핌은 4세대 걸그룹 중 유일하게 빌보드 200 4연속 톱10이라는 기록의 주인이 됐다. 2025년 10월에는 방탄소년단 제이홉이 참여한 싱글 'Spaghetti'까지 발표하며 외연을 넓혔다.
르세라핌의 4년은 차트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2024년 4월 미국 코첼라 무대에 올라 전설적 프로듀서 나일 로저스와 협연했고, 같은 해 MTV VMA에서 'EASY'로 PUSH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며 북미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2025년에는 'EASY CRAZY HOT' 월드투어로 인천에서 출발해 뉴어크, 시카고, 잉글우드,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라스베이거스 등 북미 주요 도시를 돌았다. 루이비통 글로벌 앰배서더(2023),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 캠페인 참여 등 패션·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의 확장도 꾸준했다.
이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관성이다. 르세라핌은 데뷔 때 내건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명제를, 음반·무대·해외 행보 어디에서도 흩뜨리지 않았다. 콘셉트와 행동이 일치할 때 메시지는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르세라핌의 성공 공식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안티프래자일(antifragile)'이다. 이는 단순히 충격에 견디는 강건함(robust)을 넘어, 충격을 받을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는 성질을 뜻하는 개념어다. 데뷔 직후의 멤버 이탈과 라이브 논란이라는 외부 충격을, 르세라핌은 약점이 아니라 서사의 연료로 전환했다. 미니 2집 제목이 그대로 그룹의 생존 전략이 된 보기 드문 사례다.
음악적으로는 '미니멀하지만 중독성 강한 훅 + 절제된 보컬 + 퍼포먼스 중심 구성'이라는 일관된 정체성이 빌보드 4연속 톱10을 떠받쳤다. 동시에 허윤진의 창작 참여로 곡에 멤버 본인의 목소리가 실리고, 카즈하의 발레 라인과 사쿠라의 J팝 경력, 김채원의 IZ*ONE 경험이 더해지며 '기획된 콘셉트'와 '실제 사람의 서사'가 분리되지 않는다.
4세대 걸그룹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2022~2025년, 르세라핌이 끝까지 상위권에 머문 비결은 결국 메시지의 일관성과 실행의 일치다. 이름(I'm Fearless)·곡 제목(FEARLESS, ANTIFRAGILE, UNFORGIVEN)·실제 행보가 한 방향을 가리킬 때, 팬덤은 마케팅이 아닌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르세라핌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화려한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든 4년의 일관성이다.
2022년 5월, 두 달 만에 한 명을 잃고 다섯으로 다시 선 신인 그룹이 4년 뒤 빌보드 200에 네 번 연속 톱10을 새기리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르세라핌은 그 의심마저 자기 서사의 일부로 끌어안았다.
두려움이 없다는 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움을 안고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쿠라, 김채원, 허윤진, 카즈하, 홍은채 다섯이 4년 동안 무대 위에서 증명해온 건 정확히 그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다음 챕터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쓰여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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